10월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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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정당한 이유는 없다. 그래도 인간은 멸종하지는 않을 것 같다. 생존하기 위한 잡기술(위선)이 많기 때문이다. 항정신제라던가. 심리치료 등 물리적인 방법과. 인간관계 및 망상(정신적인.)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자기기만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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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인간은 두가지 사이에서 갈등한다. 위선자와 노예이다.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사람은 위선자이다. 특히 언어를 사용하여 정당화 하는 사람은 가장 나쁜 위선자이다. 순환논리이며 정신분열을 무시한 행위이며. 자신을 기만하는 삶이다. 둘째로 노예가 있는데. 왜 태어난지 모른체 굶주림과 갈증속에서 평생 노동을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몸팔이 창녀(이시대의 병든 노동자)와 같은 도덕적 결함이 존재한다. 그런 두가지 도덕적 문제가 있는 인간상이 나약한 인간에게 나타난다. 본인이 그 둘중 하나가 될까봐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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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현실의 고통이 무서웠던 걸까. 버려야만 했던 것들이 많아서 기회비용에 집착하던 걸까. 이러한 말로 표현 가능한 것들을 모두 열거하고. 인지하고. 해답을 찾아낸다 해도 결국 위선이 될 뿐이다. 열등감이니. 공동체론이니. 정신병 치료제니. 이기주의-이타주의 문제니. 소비 생산.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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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너무나도 자신이 형이상학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여기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기 어려워 한다. 형이상적 자유란. 기존에 없는 것을 만들어낼 자유이다. 형이하적 자유는 기존에 있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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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신경반응을 0.1초라고 하면 0.1초 만에 사람을 죽이는 기계가 있다면. 혹은 수면제를 통하여 의식을 제거하고 사람을 죽이는 기계가 있다면. 이 모든 세상은 유지될 수 있는 걸까. 조건으로 나같은 인간만이 존재한다면. 유지 될 수 있을까. 이런 망상 또한 살려는 마음이다. 만들고 나서 난 매우 이중적이다. 하지만 그 기계 하나만큼은 도덕적으로 천하무적인 것이다. 위선자들과 노예를 제거하고 난 세상에는 그 기계를 욕할 수 있는 인간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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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나 표상. 그리고 자의지 그 자신의 욕망. 그러면 자의식과 자의지를 같거나 비슷한 것으로 간주한다. 자의식에는 고통이 수반되기에. 비슷한 자의지를 증가 시키는데에는 고통이 필요하다. 이것이 말장난 사상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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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에서 말한 위선적 성직자와 노예스런 창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나는 결국 그들과 비슷한 인간이다. 불완전한 도덕을 가지고 성직자스럽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처럼 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태생으로 고통받는 것은 노예와 같다. 하지만 왜 당하는지는 안다(또한 그 앎이 위선임을 안다.). 말로 설명 못하지만. 알지도 못하고 당하는 창녀와는 다른 도덕적 가치가 있다. 이로서 새로운 인간이 생겨난 것이다. 두 가치의 내적 갈등에서 불완전한 선택을 하는 자. 도덕적 문제를 인지하는자. 위선떨지 않는 자. 하지만 방황하지는 않는 자. 필요 악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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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dysee.com/@wtpc:3/2022-10-13-07-02-36-00.00.00.000-00.03.01.760-merged:5 h.265라 엣지랑 사파리 브라우저로만 볼 수 있음. https://caniuse.com/?search=he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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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 필요 악의 인간은 자살기계만 남기고 전부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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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은 그러지도 못하고 창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늙은 노처녀와 같이 다른 인간들을 도덕적으로 까내리며 희열을 느끼려나. 혹은 면피용 자살이나 하려나. 그러나 우린 그런 사람이 되어선 안된다... 이와 같이 위선적 인간이 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아니,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성격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에 그럴까 두려워 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창녀나 위선인이 될까봐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남 눈치나 자의식 과잉이라 해도 좋지만 분열된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걸 넘는게 필요악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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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들은 남이 보면 말이 안되는 걸 본인들은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주관적 생각에는 말로는 표현 못하는 것을 묶어주고 나타내는 표상이 있는데 그 표상이 옳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위선이다. 하지만 위악인들도 쓰는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그들는 위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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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고 앞뒤 안맞는데 왜 하는가. 필요악이다. 그래서 창녀가 아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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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실재론이나 신존재론은 순환논리라서 다른 방법의 접근을 시도 한다. 그곳에서 원죄 의식을 통한 위선적 금욕적 생활양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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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은 1800년대 아나키즘 및 극단적 자유주의와 산업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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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그래서 우리의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 되었는지 설명하고, 어떤 결말을 맞이 할지 예언 하시겠습니까?
예언자: 그렇습니다.
질문자: 첫번째 부터 하시죠
예언자: 문제가 가시화 된건 1800년대 초 부터라고 봅니다. 문제의 조건으로 과학 기술의 발전과 교육의 제도화 및 중요성이 커지고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와 기존 도덕과 윤리 및 종교의 계몽주의적 몰락으로 인한 아나키즘의 발생. 그리고 윤리 허무주의.
예언자: 문제 조건들의 형이상적 성질을 나열하겠습니다. 1. 인위적, 타율적인 생활 (교육과 기술의 문제) 2. 고립화 (산업화) 3. 허무주의
예언자: 잠시 건너 뛰어서 우리의 문제자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는 병들었습니다. 그는 기존의 치료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 치료법은 위선입니다. 예를 들어 긍정적인 생각하기, 이타적으로 행동하기, 빚을 갚아야 함, 미안함과 고마움, 사랑, 욕망을 억제하기, 기계적인 활동과 하나에만 집중하기, 공동체에 헌신하기, 죄책감 가지기, 외적인 본질을 믿기... 등등 그리고 이것을 '자기개발서' 라고 하며 우리는 '잡기술' 이라고 합니다.
예언자: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잡기술을 쓰면 치료(아래에서 더 이야기 합니다.)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항정신제- 같은 것이기 때문이며. 정말로 객관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자는 기를 쓰고 주사기를 맞지 않으려 합니다.
예언자: 그가 그러는 것은 그것이 위선이기 때문이며... 그가 겁쟁이며 도덕적인 결벽증을 지녔고. -마약- 중독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마약은 노예로 가는 길이며 타성에 젖은 삶을 의미하겠습니다.
예언자: 그래서 결국에는 잡기술을 쓰기는 합니다. 과연 치료가 잘 될까요? 여기서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이 나뉩니다. 이제 되는 사람은 우리주변의 위선과 가식의 인간... 앞으로 살아나갈 신인류이며 그러지 못한 인간은 바로 저. 위악인입니다. 그리고 낙오자는 마약중독자로 노예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언자: 우리 위악인은 무엇을 바랬기에 이렇게 되었는가? 1. 인위적 타율적인 에서 자율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 2. 고립적인것이 입맛에 알맞게 되어버렸다. 3. 허무주의자라서 정신 승리 잡기술이 먹히지 않는다... 소위 참을성이니 정신력이 약한거다.
예언자: 우리 위악인의 미래는 무엇인가? 우리는 되고 싶은 사람이 없다. 이기주의자라서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본 인간은 도덕적으로 불완전하여. 결코 되고 싶은 부류의 인간은 아니다. 그 '도덕적으로 완벽한' 원래는 인간이여야 했을 기계... 그것은 안락사 장치이다. 우린 그것에 의한 죽음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