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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글

악령 3권중 1권을 도서관에 가서 읽었습니다. 근데 1권에는 딱히 흥미로운 부분은 없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심리 묘사만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흥미를 느낄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용이 반복된다 느낄 수 있습니다.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알겠지만, 제1부가 다 끝날 때까지도 스따브로긴은 하나의 배경인물인 것처럼 밖에는 생각되지 않고 오히려 스쩨빤 선생과 바르바라 부인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 일종의 심리소설처럼 느껴진다. 작품의 본 사건이 전개되는 것은 제2부부터이며, 그것도 모든 사건이 지사(知事) 부인의 축제 행사를 전후하여 발생한다. 이런 점은 도스또옙스끼의 다른 작품들 가령 《죄와 벌》이나 《까라마조프 형제들》도 마찬가지이다.
-5월 16일 기록 추가, 동서문화사 월드북에 적힌 내용-

1부는 민음사 2,3부는 월드북으로 보았다.


언제나 많은 고민이 있다.

그것은. 틀림없지만 완벽하지 않은 당위이다. 마치 수학 문제의 답을 알고 실제로 유효하지만 설명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 이를 알면서도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끊어내지 못했다.

왜 설명할 필요가 없는가? 1.상대적인 주제이고 2.답을 알고 그 답을 대입만 하면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벽증 인지 겁쟁이라 그런건지. 그 답이 맹목적이란 느낌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것이 안 해야 할 이유는 아니지만 문제를 그만 바라보게 만들고 패닉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이 문제다.

이쯤 써보니까. 너무 추상적인 글 쓰기 방법이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은 무의미 하다. 왜냐면 추상적인 관념 몇 가지를 축으로 두고 좌표 위에 점찍는 방식으로 둘 수 없는 문제니까. 어디에 위치 하기엔 축이 너무 상대적이다.

조헌병 냄새가 난다. 현대인은 맹목적인 행동으로 이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좋은 현대적인 환경이 필요하겠지만.

흥미있는 질문을 하자면,

  1. 너무 삶에 부정적인게 아닌가? - 아니오
  2. 그렇다면 억울하지는 않는가? - 아니오

억울함 이란 고통은 나쁜 생명체에게(악한 인간)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에서 생기는가?

용기와 만용은 도전의 성패에 달린것인가? 도전은 무엇인가? 그 이전 감정상태는 무엇인가? 드러줄 사람은 존재하던가?


도전이란 무엇인가.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를 근거로 행동하는 것...

하지만 이 시대란. 안되면 되는 것이며... 된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내가 써놓고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2023.02.22)

그러니 용기 없다는 소리를 듣는 건가?

그래서 도전을 안 한다 하고... 그것이 이 꺼림칙한 기분의 근원인가?

정리하자면. 꺼림칙함이란. 도전하기 이전에. 성공의 이득을 파악하기 힘들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또 다른 꺼림칙함 이란? 기존 전통도덕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며 비 상식적인 생각이다.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는 점이다. 필요악의 부분에서 이를 다루었다...


약간의 정보들

국가건강정보포털

나름 유용한 정보가 있다.

모바일 엣지 브라우저도 flag-ads 설정하면 수동으로 광고 차단을 할 수 있다.

모니터 뒤에 메뉴에 Sharpen(선명도)를 변경할 수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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