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네하마스 — 서문(Foreword)
알랭 르노, 『개인의 시대: 주체성의 역사에 대한 기여』(The Era of the Individual: A Contribution to a History of Subjectivity)
번역은 원문의 논증과 문단 구성을 최대한 유지하되, 한국어에서 부자연스러운 표현은 다듬었어. *Subject*는 ‘주체’, *individual*은 ‘개인’, *autonomy*는 ‘자율성’, *antihumanism*은 ‘반인간주의’, *immanence*는 ‘내재성’으로 통일했어.
제1부 (vii\~xiii쪽)
최근까지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은 수많은 미국 독자들을 그와 비슷한 강도로 매혹시키기도 하고 혐오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하이데거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서구의 기술 문명이 도달했다고 여겨지는 막다른 골목을 가장 명료하게 이해한 사상가였으며, 어쩌면 희미하게나마 다른 세계의 모습을 엿보았을지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반면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하이데거는 혐오스러운 정치적 과거를 지닌 반계몽주의자였으며, 심오한 이해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을 가로막는 데 불과한 난해한 신조어들을 만들어내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재였는가? 아니면 사기꾼이었는가? 이러한 논쟁은 마침내 지나간 일이 되었다. 하이데거는 여전히 상당수 미국 철학자들에게 의심스러운 인물이지만, 그의 명성은 점차 확고해졌고 그의 권위도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이제는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보다 추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사실 하이데거는 미국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그의 사상과 미국의 실용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몇 가지 연관성, 특히 실천이 이론에 선행한다는 그의 견해가 부분적으로 작용했다. 『존재와 시간』(1927)의 핵심 명제 가운데 하나는, 세계와 맺는 우리의 근본적인 상호작용이 실천적이며, 모든 것이 예상대로 작동하는 한 본질적으로 비반성적이라는 것이다. 사물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고치기 위해 이해할 필요가 생겼을 때 비로소 우리는 반성적이고 이론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이데거의 지위가 점차 공고해진 이유가 전후 프랑스 사상의 확산에 있다는 사실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사상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피에르 부르디외, 루이 알튀세르, 자크 라캉 등이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되면서, 그들의 비판적 사유 배후에 자리한 근대성에 대한 혐오를 공유했던 하이데거 역시 미국 독자들에게 이전 어느 때보다 긍정적으로 읽히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하이데거의 명성이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철학적 분위기의 전반적인 변화와 더불어, 나치 독일에서 하이데거가 수행한 정치적 역할에 관한 여러 사실이 폭로된 이후, 프랑스에서는 이제 철학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과연 하이데거와 연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푸코와 같은 세대의 저자들은 파리에서 거의 정전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에 이르러 그들에 대한 지적·정치적 반발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회당이 정권을 장악하자 지식인들은 좌파에서 멀어져 중도와 우파로 이동했다.
뤼크 페리와 알랭 르노는 이러한 새로운 운동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1960년대 프랑스 철학』은 1985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이룩한 성취를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동시에, 이른바 ‘68사상’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을 전개한다. 페리와 르노는 68사상이 자유주의를 불신하게 된 원인을 하이데거에게서, 그리고 그보다 적은 정도로 마르크스에게서 물려받은 ‘반인간주의’의 영향에서 찾는다.
페리와 르노는 하이데거가 주장한 근대성과 민주주의의 전면적인 거부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믿는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들은 ‘반인간주의’가 인간 주체라는 관념 자체를 제거함으로써 기본적 권리의 존재 가능성까지 제거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권리는 인간이 바로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에게 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권리를 확고하게 신봉하며, 이를 근대성이 제시한 위대한 ‘약속’ 가운데 하나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만은 아니다. 동시에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에 따르면, “민주주의 세계는 끊임없이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바로 그 약속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세계를 비판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의 비판은 하이데거주의자들의 거부주의와 달리 내재적인 비판을 지향한다. 민주주의의 목표 자체는 지지하면서도, 우리가 그 목표를 실현하기까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하이데거와 그의 영향력에 대한 현대의 반발은 개념적인 차원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가 민주주의의 찬양자로 알려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치즘에 대한 그의 관여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1987년 빅토르 파리아스의 『하이데거와 나치즘』이 출간된 이후였다.
파리아스의 책은 나치에 대한 하이데거의 관여가 그가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던 악명 높은 10개월보다 훨씬 깊고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했다. 그는 계속해서 당비를 납부하는 나치당원으로 남아 있었으며, 여러 나치 지도급 인사들과 정치적·이념적 관계를 유지했다. 어쩌면 더욱 심각한 것은 그가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진정으로 중대한 오류라고 인정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1988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페리와 르노의 『하이데거와 근대성』의 주요 논지는, 근대성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 나아가 ‘서구’ 전체의 역사에 대한 그의 비판이 권위주의적이고 향수에 젖은 우익 정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정치관이 하이데거의 프랑스 추종자들이 그것을 급진적이고 좌익적이며 유토피아적인 목적에 사용한 것과는 극도로 어울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이데거 철학을 좌파 지식인들의 맥락으로 옮겨놓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정치적 정화 작업이 이루어졌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그들은 1988년에 이렇게 썼다], 하이데거주의는 …… 인류가 미국식 상업주의로 전반적으로 붕괴하는 상황에서 사유를 구제하려는 황혼의 과업에 계속 매달릴 수 있게 해주었다.”
하이데거는 근대성의 두 가지 핵심 제도인 민주주의와 기술이 서로 밀접하게 대응한다고 믿었다.
기술은 과거 소수의 특권이었던 것들을 다수의 필수품으로 바꾸어놓는다. 기술이 각 개인에게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면, 정치적 차원에서는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사회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기술과 민주주의는 모두 개별적인 인간들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양자는 모두 ‘인간주의적’이다. 하이데거에게는 바로 이러한 ‘인간주의’가 문제였다.
기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페리와 르노 자신의 태도는 하이데거의 태도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기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경멸을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분리하고자 한다.
그들은 근대성이 지닌 ‘비극적 측면’의 일부가 다음과 같은 현상과 관련된다고 본다.
“순수한 기술의 세계가 출현하고, 그 결과 문화가 산업적 대중문화로 변형되는 것.”
그들은 자신들의 비판과 하이데거의 비판이 동일한 ‘대상’, 곧 기술과 대중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신들의 ‘목적’과 하이데거의 목적은 서로 겹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이데거가 근대성과 민주주의를 비판할 때 사용한 주요 철학적 무기는, 페리와 르노에 따르면 그의 ‘반인간주의’였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근본적인 본성과 욕망을 알지도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한다는 확신이다.
『개인의 시대』에서 르노는 반인간주의의 기원과 본성에 관한 철학적 진단을 제시한다.
이 책은 『1960년대 프랑스 철학』에서 간략하게 암시되었을 뿐인 몇 가지 사상을 매우 상세하게 발전시킨다.
르노는 개인이라는 관념을 라이프니츠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고, 버클리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모든 제약으로부터 점진적으로 해방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는 논쟁적인 견해 하나를 옹호한다. 개인주의의 지속적인 성장은 결국 주체라는 관념의 해체에 다름 아닌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어떠한 한계도 인정되지 않을 때, 언제나 다른 사람이나 규범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자율성이라는 관념 역시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르노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흐름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근대 철학의 두 가지 주요 특징이 결국 서로를 상쇄한다고 결론짓는다.
근대성은 하이데거가 믿었던 것처럼 주체라는 관념을 탄생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근대성은 주체의 소멸까지 초래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는 반인간주의 자체가 근대적 전통의 일부인 것이다.
페리와 르노의 철학적 기획은 근대성의 가장 가치 있는 측면, 곧 인간의 권리라는 관념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각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과 관계없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권리다.
그들은 우리 자신에 대한 주권을 새롭게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입장을 ‘겸손한’ 그리고 ‘비형이상학적’ 인간주의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인간주의를 정교하게 설명하는 것이 그들의 여러 저작을 관통하는 핵심 목표다.
그들의 목표는 훌륭하다. 또한 비판은 오직 ‘내재적’이거나 부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거창한 전면적 거부는 흔히 거창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들의 생각은 대단히 옳다.
그러나 『1960년대 프랑스 철학』은 철저히 논쟁적인 저작으로, 적대자들의 입장을 단순화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과장한다.
이 책의 핵심 논증은, 1970년대에 이미 프랑스에서 영향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던 마르크스—물론 그의 영향은 부르디외, 알튀세르, 그리고 푸코의 일부 저작에서도 여전히 명백하게 드러나지만—를 제외한다면, 하이데거가 푸코, 데리다, 라캉 등으로 대표되는 68사상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단 한 명의 사상가라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왜 전후 프랑스 사상에 그토록 중요했는가? 그리고 근대성에 대한 그의 비판을 뒷받침하는 ‘반인간주의’란 정확히 무엇인가?
우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나치즘과 결별했다고 여겨지는 시기 이후인 1935년에 발표된 『형이상학 입문』에서조차 하이데거는 거리낌 없이 다음과 같이 썼다.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와 미국은 동일하다. 똑같은 황량한 기술적 광란, 똑같이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평균적 인간의 조직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는 협공을 당하고 있다.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 민족은 가장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우리 민족은 가장 많은 이웃을 가진 민족이며, 따라서 가장 위험에 처한 민족이다. 동시에 우리 민족은 가장 형이상학적인 민족이기도 하다. …… 이 모든 것은 이 민족이 …… 자기 자신을 움직여, 그럼으로써 서구의 역사를 미래의 ‘사건’의 중심을 넘어 존재의 힘들이 깃든 근원적인 영역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하이데거가 그 ‘형이상학적’ 본성을 찬양하던 민족의 정치체제가 국가사회주의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그의 사상은 전후 세계의 두 강대국을 동시에 비판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지적 곡예의 결과로, 서구의 개인주의적이고 소비주의적인 광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반드시 동구의 전체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광기를 지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하이데거는 사람들이 열렬히 갈망하던 제3의 길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양대 진영은 모두 ‘기술의 지배’가 초래한 ‘지구의 정신적 쇠퇴’의 산물로 간주될 수 있었다.
체제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은 이렇게 정치적으로 정화된 하이데거를 이용하여 미국과 소련 중 어느 한쪽을 직접 지지해야 하는 정치적 선택을 회피할 수 있었다.
더욱이 하이데거에게 기술의 지배는 그 ‘본질’에서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과 동일하다. 그리고 이러한 형이상학은 다시 ‘인간주의’를 중심적인 특징으로 삼는다.
하이데거가 공격하는 인간주의란 인간을 세계의 궁극적인 ‘주체’로 간주하며, 모든 사물, 즉 ‘객체’가 그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되고 분류된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핵심 관념이 포함된다.
첫째, 세계는 우리 자신의 지적 삶을 지배하는 원리들, 특히 이성의 원리들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자아와 마찬가지로 결코 풀 수 없는 신비를 포함하지 않는다.
둘째, 세계는 다시금 우리 자신의 자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욕망과 의지에 완전히 부합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구성하는 객체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사용하고 착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의해 자신의 현실성을 부여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물은 우리가 그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하이데거는 자연을 고유한 질서와 온전성을 지닌 체계로 바라보고, 가장 훌륭한 인간의 삶을 그 자연과 조화롭게 관조적인 관계를 맺는 삶으로 여기는 이러한 대안적 태도를 충분히 명료하게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형이상학’의 승리에 반대하는 글을 방대하게 남겼다. 여기서 형이상학이란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를 거쳐 니체에 이르는 긴 사유의 전통을 의미한다.
하이데거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전통은 자연을 오직 그 유용성과 관련해서만, 즉 착취와 지배의 대상으로만 파악했다.
하이데거도 데카르트에게서는 기술과 과학이 여전히 인간의 더 큰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자연의 지배를 목표로 삼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니체에 이르면 지배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며, 더 이상 다른 어떤 목적에도 봉사하지 않게 된다.
하이데거의 논쟁적이지만 영향력 있는 해석에 따르면, 니체의 ‘권력 의지’는 자기 자신을 영속시키는 활동이다. 그것은 자신의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목표로 삼지 않는 의지, 즉 의지를 향한 의지다.
‘자연’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자연은 단지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원재료이자, 새로운 지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을 유일한 기능으로 하는 저항의 원천에 지나지 않는다.
하이데거의 고상한 비판은 현대 생활의 저속한 현상에도 쉽게 적용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광고의 언어는 하이데거가 근대성에서 불쾌하게 여기는 것을 저속하지만 정확하게 상징한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미 이용 가능한 수단들의 ‘새롭고 개선된’ 형태를 찾는 일뿐이다. 그것도 그러한 수단들이 실현할 수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목표 자체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유일하게 가치 있는 목표는 수단의 끝없는 증식이다.
중요한 것은 이전보다 무언가를 더 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것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는 더 이상 질문되지 않는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러한 맹목적인 조작 욕구가 출현한 것은 근대성이 이성을 순전히 도구적인 능력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반면 고대인들에게, 심지어 중세인들에게까지 이성은 가치 있는 목적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하이데거와 좌파 사이의 중요한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구성원들, 특히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도구적 이성’에 맞서 벌인 투쟁은 하이데거가 그것에 맞서 벌인 투쟁만큼이나 격렬했다.
물론 비판이론가들이 옹호한 변화의 방향은 자연과 맺었던 더 오래되고 가장 본래적인 관계로 돌아가고자 했던 하이데거의 향수 어린 열망과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양자는 기술적 진보와 대중문화의 조야함과 저속함에 대해 느끼는 혐오를 공유했다.
페리와 르노에 따르면, 하이데거와 그의 추종자들은 근대성의 인간주의를 근거로 근대성 전체에 타협 없는 공격을 가했다. 인간을 궁극적인 주체, 곧 ‘지구의 군주이자 지배자’로 간주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인간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된 주체성은 실천적 차원에서는 개인적 자율성을, 이론적 차원에서는 자기인식을 포함한다.
이 두 차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즉 주체는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알고 있으며, 자신의 작용 가운데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불투명하거나 접근 불가능한 부분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
또한 주체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자다.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어떠한 요인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외부의 객체들 역시 동일한 이론적·실천적 원리들에 복종하기 때문에, 자연, 곧 사물들의 총체는 인간의 이해와 조작에 완전히 열려 있다.
주체가 인식과 통제의 차원에서 자기 자신에게 ‘현전’하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 역시 주체에게 ‘현전’한다.
실제로 이러한 의미에서 ‘현전한다’는 것은, 비록 언제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의미는 아니지만,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는 표지가 된다.
인간주의를 공격한다는 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된 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며,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의식하고 자율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페리와 르노에 따르면, 하이데거와 그의 추종자들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의 주권을 문제 삼는다.
푸코에게 인간 주체는 비인격적인 권력, 지배, 정상화의 여러 힘에 침투당하거나 심지어 그것들에 의해 완전히 구성된다.
데리다에게는 의사소통을 완전히 실현하는 능력이 코드 자체의 구조에 의해 훼손된다.
라캉에게는 무의식적 힘과 욕망이, 부르디외와 알튀세르에게는 경제적·사회적 요인들이 주체를 규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 주체는 자기 자신에게 투명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주체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
그 결과 자율성은 사라진다. 겉보기에는 자유로운 결정들이 실제로는 알려지지 않은 독립적인 힘들의 작용에 따른 결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체가 이러한 의미에서 자기 자신에게 ‘현전’하지 않는다면, 세계가 주체에게 현전한다고 믿을 이유는 더욱더 적어진다.
따라서 사물의 존재가 무엇인지는 그것들이 인간의 사용과 소비를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형이상학’, 즉 하이데거에 따르면 서구를 지배해온 사유 양식은 존재한다는 것을 이용 가능하다는 것과 동일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본질적으로 ‘기술’, 즉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조작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형이상학은 인류 역사가 걸어갈 수 있는 여러 가능한 경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하이데거는 후기 저작들의 주문을 외우는 듯한, 거의 제의적인 언어를 통해 세계와 맺을 수 있는 또 다른 관계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느낌이며, 어떤 존재 방식인지를 환기하고자 했다.
그는 세계에 대한 ‘비형이상학적’ 태도를 구현할 수 있는 어휘를 발전시키려 했다. 그러면서도 형이상학을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가 언제나 또 하나의 형이상학 체계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전통 전체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자신의 역사와 세계 전체를 알고 통제하려는 또 하나의 욕망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
이것은 그가 니체를 ‘최후의 형이상학자들 가운데 최초의 인물’이라고 규정하면서 제기했던 유명한 비판이다. 이후 데리다가 하이데거에게 제기한 비판이기도 하며, 오늘날 다른 사람들이 데리다에게 제기하고 있는 비판이기도 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미래에는 그들 자신도 같은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비판이 옳다고 믿는다.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뒤에 남겨두려는 시도는, 그 역사가 단일한 통일체라는 관점과 결합할 경우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건설하려면 반드시 옛 전통의 일부를 건축 재료로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이상학’이 옛 전통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면, 그것은 후속 전통까지도 오염시키게 될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 문제에 끊임없이 사로잡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후기 저작들에서 특이한 시적 어휘를 발전시켰다. 그의 희망은 개별 단어들을 과거의 형이상학적 예속으로부터 해방하여, 그 단어들로 서술되는 이야기가 그러한 예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가 ‘존재자들의 존재’를 연구하는 형이상학에서 벗어나 ‘존재의 물음’으로 향할 것을 촉구한 것,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부르고 인간을 ‘존재의 시’라고 부른 것 등은 모두 비형이상학적 언어와 태도를 구축하려는 노력의 일부였다.
그것은 우리가 지구에서 세계와 대립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태도였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시도는 실패했다.
집조차도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실패는 때로 그 실패를 알아차리는 사람들을 위협하도록 고안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의 본질적 성격’, ‘형이상학적으로’, ‘……의 내적 진리와 위대함’ 같은 단서들이 하이데거가 논의하는 모든 것의 더욱 심층적인 차원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적 진리와 위대함’이란 국가사회주의의 ‘내적 진리와 위대함’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전 지구적 기술과 현대인의 만남’으로 밝혀진다.
이러한 표현 방식에서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단지 이해력과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증거처럼 취급된다.
형이상학을 뒤에 남겨두려는 하이데거의 시도는 심각한 철학적 오독들에 기초해 있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편향적인 해석에서 시작하여, 니체에 대한 거대하고도 탁월하지만 왜곡된 해석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과 플라톤 사이의 연속성은 하이데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
또한 니체는 지나치게 영리하고, 다작이며, 변화무쌍했고, 자신이 공격하던 전통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잘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권력 의지』의 몇몇 구절만을 근거로 그를 형이상학자로 고정할 수는 없다.
『권력 의지』는 니체가 사망한 뒤 그의 여동생이 편집한, 체계 없이 모아놓은 유고의 집합이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그것을 니체의 주요 미완성 저작의 골격인 것처럼 집요하게 해석했다.
또한 ‘근대성’과 ‘서구’를 ‘기술’이나 ‘형이상학’ 같은 단일한 본질을 가진 하나의 거대한 구조로 바라보는 하이데거의 경향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나는 심지어 ‘기술’조차 하나의 단일한 현상을 지칭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시대 전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때로 용감하고 탁월한 행위일 수 있을지라도,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모든 것을 뒤에 남겨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제2부 (xiv\~xvii쪽)
요컨대 나는 하이데거에 대한 페리와 르노의 많은 비판에 동의한다. 민주주의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으면서 그 내부에서 비판하려는 그들의 긍정적인 목표에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그들 자신의 긍정적인 접근 방식이 여전히 하이데거의 근대성 분석에 지나치게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분명 ‘인간주의’ 자체도 ‘서구’나 ‘형이상학’ 등의 개념만큼이나 복잡하고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인간주의자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며, 반인간주의자라고 해서 반드시 인간의 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하이데거의 반인간주의는, 인간주의가 스스로 육성하고 탄생시킨 기술의 노예로 우리를 만들었다는 그의 인식에서 바로 비롯된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인간주의는 인간에게 우주에서의 절대적인 중요성, 세계의 외부적인 힘들로부터의 절대적인 자유,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지식과 통제력을 부여하는 입장이다.
이는 과거 신의 피조물이었던 존재들에게 신의 특성을 부여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실제로 이러한 극단적 인간주의의 일부는 하늘에 도전하려는 바로 그러한 충동에서 기원했다.
반면 가장 극단적인 반인간주의는 개별 인간이 우주에서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않으며, 역사의 진정한 주체인 외부의 힘들—경제적·사회적·성적 힘들—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심지어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극단은 철학사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에서 서로 반대편 끝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인간에게 부여하는 중요성, 자유, 자기인식의 정도가 서로 다른 수많은 입장이 존재한다.
개인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이 서로 결합하고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중간 영역에서는, 특정 입장이 정확히 어느 쪽에 속하는지 말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요인들이 적절히 혼합된 입장은 인간주의나 반인간주의라는 어느 명칭으로도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페리와 르노는 근대성에 대한 하이데거의 주요 반대가 그의 특유한 반인간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기술과 민주주의가 세계와 사회 안에서 개인에게 적절한 수준을 넘어서는 권력을 부여했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근대성이 자신들이 ‘비극적 측면’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닌다는 점에서 하이데거에게 동의한다.
그것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는 근대에 전통의 권위가 침식되었다는 것이다.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들은 아무리 준비가 부족하더라도 그러한 문제들에 스스로 답해야 한다.
두 번째 측면은 다시금 ‘순수한 기술의 세계가 출현하고, 그 결과 문화가 산업적 대중문화로 변형되는 것’이다.
페리와 르노는 근대성의 이러한 특징들이 왜 하이데거의 비판을 그토록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만드는지 설명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그들은 근대적인 것에 대한 하이데거의 전면적인 거부보다 더욱 섬세하고 복잡한 접근 방식을 원한다.
그들은 인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인간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들은 그 인권의 구체적인 성격을 대체로 명시하지 않은 채 남겨둔다. 그들이 보기에 68사상은 바로 그 인권을 포기하려는 사상이었다.
“찬란한 미래[마르크스]의 이름으로 수행되든, 전통주의적 반동[하이데거]의 이름으로 수행되든, 근대 세계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은 필연적으로 반인간주의가 된다. 그것은 예컨대 민주주의적 기획과 인권에서 이데올로기 또는 형이상학적 환상의 전형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그러한 비판은 근대성 자체의 약속이기도 한 것들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는 데 구조적으로 무능하다. 설령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는 불성실하게,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입장에 반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페리와 르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오늘날 적어도 칸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기에 이미 해체가 시작된 주체성의 형태들을 철학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는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인간이 세계의 완전한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계몽주의적 견해, 즉 전통적 인간주의는 회복될 수 없다.
그러나 그 덕목들은 보존될 수 있다.
더욱 현대적인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협력’과 외재적 비판 사이에, 정말로 내재적 비판을 위한 자리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들은 민주주의 세계가 끊임없이 약속을 하면서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 약속의 이름으로 …… 현재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세계를 비판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이러한 정서는 모두 칭찬할 만하다.
페리와 르노는 근대성 전체의 바깥에 서는 것을 거부한다. 어차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들은 온건한 인간주의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 주체에게 상당한 수준의 자율성과 자기인식을 부여하면서도 그것을 ‘절대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을 통해 인권의 견고한 토대를 마련하려 한다.
인간주의는 유연한 개념이다.
페리와 르노는 자신들의 ‘겸손한’ 인간주의를 다소 놀랍게도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제시한 유명한 정의에 기초하여 설명한다.
그것은 사르트르가 불행하게도 훗날 철회하게 되는 정의다.
사르트르는 이 글에서 자신의 유명한 명제인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를 설명하기 위해 인공물과 인간을 대비한다.
인공물은 그것이 수행할 기능에 대한 구상에 따라 제작된다.
따라서 “그것의 본질, 곧 그것의 제작과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공식과 성질들의 총체는 그것의 실존에 앞선다.”
사르트르의 설명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을 신이 제작한 인공물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르트르에 따르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본질에 앞서 실존하는 존재가 하나 있다.”
“인간은 우선 실존하고, 자기 자신과 마주치며, 세계 속에 출현한다. 그리고 그 후에 자기 자신을 정의한다. …… 처음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 인간은 단지 자신이 의지하는 것, 이미 실존한 이후에 자기 자신을 구상하는 그대로의 존재다. ……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페리와 르노는 사르트르의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진정한 주체는 ‘무’다. 왜냐하면 주체는 자신을 어떤 정의 속에 포착하려는 모든 시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을 제작된 사물과 구별하는 자유다. 제작된 사물은 실존하기 위해 먼저 장인의 정신 속에서 구상되고, 따라서 처음부터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물이 어떤 ‘것’, 즉 규정된 무엇이라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적인 주체는 규정된 아무것도 아니며, 동일시할 수 있는 무엇도 아니다.
다시 말해 주체는 자기 자신과 단절한다. 왜냐하면 주체는 언제나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모든 것, 심지어 자기 자신의 눈에 자신을 규정하는 것마저 넘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페리와 르노의 관점에서 사르트르의 인간주의는 ‘루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에 속한다.
이러한 전통에서 “인간의 구별되는 특징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인간의 본질은 본질을 갖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자기기만’ 속에서 행동함으로써 인간주의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자유를 스스로 부정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을 자신의 여러 역할이나 특징 가운데 단 하나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하나의 피조물인 것처럼, 마치 자연이나 역사가 우리를 규정하는 코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자연이나 역사가 우리의 ‘코드’이며, 따라서 우리가 외부의 힘들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는 생각은 바로 페리와 르노가 68사상에 귀속시키는 견해다.
나는 이러한 귀속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적어도 성의 역사에 관한 푸코의 후기 저작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인간주의가 얼마나 ‘온건한’ 것인지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가 더욱 시급해 보인다.
사르트르의 인간주의가 계몽주의, 나아가 피히테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페리가 자신의 『정치철학』 제1권에서 권리 개념의 토대로 삼고 있는 피히테의 사상은 극도로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인간주의는 결코 ‘온건한’ 것이 아니다.
인간, 곧 ‘대자존재’와 세계의 나머지 모든 것, 곧 ‘즉자존재’ 사이에 절대적인 구별을 설정하는 사르트르에게 호소하는 것은 결코 온건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체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상정하는 루소에게 호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는 이러한 호소가 페리와 르노를, 그들 스스로 우리가 되돌아갈 수 없다고 믿는 바로 그 ‘해체되지 않은 주체성의 형태들’로 되돌려 보내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형태들로 되돌아갈 수 없는가?
그들의 이유는 우리가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역사에 의해 규정된다는 데 있는 듯하다.
우리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우리가 속한 역사적 시대, 사회적·문화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요컨대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부분적으로 구성하는 힘들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페리와 르노는 우리가 그러한 힘들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는 주장을 부정하고자 한다.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우리가 그러한 힘들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선택에 대해 완전한 주권을 갖는다고 믿었다.
바로 이것이 사르트르가 “인간은 …… 정의될 수 없다. …… 왜냐하면 처음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썼을 때 의미한 바다.
사르트르에게 우리가 자유로운 행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 우리가 우연히 처하게 된 모든 상황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일 때뿐이다.
나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자신이 처한 상황, 즉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힘들로 환원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우리가 처한 어떤 특정한 상황으로부터도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고, 다양한 집단에 속할 수 있으며, 다양한 기술과 평가의 기준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능력,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 한마디로 우리가 복잡한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특정한 역할이나 집단, 기준을 비판하고 ‘초월’할 수 있다.
하나의 역할에 의해 규정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능력뿐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그러한 역할들 모두를 한꺼번에, 동시에 비판하고 포기하는 일이다.
우리는 실제로 자기 자신의 부츠 끈을 잡아당겨 자신을 들어 올릴 수 있다. 그러나 한 번에 부츠 한 짝씩만 가능하다.
개인은 자신과 관계 맺는 세계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힌 여러 가닥들의 결합체라는 이러한 관점은 니체와 푸코에게 어느 정도 빚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비난받아 마땅한 의미에서의 반인간주의가 아니다.
따라서 ‘1960년대 프랑스 철학’, 즉 인간주의를 비판했던 사상이 이미 죽었다고 선언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그 사상의 일부 흐름은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흐름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인권 이론을 정립하려는, 훌륭할 정도로 비하이데거적인 동기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페리와 르노는 여전히 하이데거의 마법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 세계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술의 세계에 대한 하이데거의 경멸을 공유한다.
그들은 무책임한 여담처럼 이렇게 묻는다.
“광고 때문에 영화가 중간중간 잘리는 것을 누가 한탄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언급이 무책임한 이유는 문화적 저속함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바로 그 기술이 실내 배관시설, 대규모 예방접종, 정보에 대한 접근성의 확대까지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기술의 세계는 곧 근대성의 세계다. 그리고 그들이 호소하는 인간주의는 바로 그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결국 현대 세계에서 기술과 민주주의가 서로 독립적인 것처럼, 기술과 ‘대중’문화의 세계를 비난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비난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기술에는 ‘반대’하면서 민주주의에는 ‘찬성’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술과 민주주의를 쉽게 분리할 수는 없다.
양자를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흔하지만 중대한 오류이며, 우리는 그러한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대중문화’는 어쩌면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일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를 불쾌하게 여긴다는 것은 곧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 자신을 불쾌하게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중문화는 누구의 문화가 아니란 말인가?
더욱 깊이 성찰한다면 ‘대중문화’는 겉보기만큼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님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페리와 르노가 기술과 민주주의를 분리하려고 고집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 자신의 정의에 따르더라도 ‘전근대적’ 세계에 속하는 인간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들은 이러한 인간관을 하이데거의 것으로 올바르게 귀속시키면서도, 그것을 ‘전통주의적 반동’이라고 규정한다.
이 표현은 특히 페리와 르노 자신도 전통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가혹하다.
보다 관대하면서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페리와 르노는 자신들이 전통적 자유주의의 부활이라고 여기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동시에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유로운 사회의 이상을 존중하면서도,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몇몇 수단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는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이상이 보장되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렉산더 네하마스 (Alexander Nehamas)